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트해 전역 (문단 편집) ==== 베오울프 작전 ==== ||[[https://en.m.wikipedia.org/wiki/File:WWII_Moonsund_Def.jpg]]|| 배오울프 작전 지도 7월 1일 쿠즈네초프 상장은 27군을 히우마 섬과 사아레마 섬으로 방어전을 준비하게 한다. STAVKA는 모스크바에서 21기계화여단을 해체시키고 27군에 배속시켜 전력을 강화시켜준다. 27군 예하 3소총여단 23700명이 방어를 맡았다. 독일군 61보병사단은 에스토니아군도 동원해 전투를 했다. 독일군은 소련군을 혼란시키기 위해 일련의 기만작전을 펼쳤다. [[크릭스마리네]]는 100척의 [[바지선]]과[* 웬 바지선?이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독일은 엄연히 무장한 바지선을 운용했다. 지벨패러(Siebelfähre)라고 불리는 쌍동 바지선이 대표적인 물건이다. 무장은 주로 [[대공포]]로 했는데, 20mm [[Flak30/38]] 4연장 터렛이나 [[88mm 대공포]]를 장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50척의 소형 공격선 그리고 [[엠덴급 경순양함]] [[엠덴]]과 [[쾨니히스베르크급 경순양함]] [[쾰른]]과 [[라이프치히급 경순양함]] [[라이프치히]]를 동원했다. 한편 해안 포격을 위해 출발한 핀란드 해군 주력함인 [[베이네뫼이넨급]] 일마리넨이 항코에서 기뢰를 건드려 침몰했다. 독일군은 Vormsi라는 작은 섬을 히우마 섬 공격을 위해 확보한 후 9월 14일 무후 섬에 상륙해 9월 16일에 완전히 점령해서 사아레마 섬을 공격할 교두보를 마련한다. 9월 17일 사아레마 섬을 공격하고 9월 23일 쉐르페 반도로 소련군을 밀어낸다. 그리고 10월 5일 독일 해군의 지원 아래 61사단은 소련군에게 다시 강력한 공세를 가했고 10월 21일에 항복을 받는다. 히우마 섬은 9월 12일에 공격했고 소련군을 타쿠나 반도(Takhuna Peninsula)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9월 21일에 항복을 받아냈다. 독일 공군과 해군이 지역을 포위했기에 소련군이 도망칠 곳은 없었다. 소련군 4천 7백명이 전사했고 1만 9천명이 포로로 잡혔다. 독일군의 사상자는 2850명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